국내 첫 원전 '고리 1호기' 해체 결정…대한민국 원자력 정책의 분기점
2025년 6월, 대한민국 원자력 역사에서 상징적인 이정표가 세워졌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17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 후 약 8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제는 해체라는 마지막 여정을 걷게 된다. 이 해체 결정은 단순한 기술적 절차를 넘어, 한국의 에너지 정책, 원자력 안전문화, 탈원전과 원전수출 전략 등 다양한 이슈와 맞닿아 있다.
고리 1호기, 40년의 역사 마무리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 1호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로, 총 587메가와트(MW)급 가압경수형 원자로였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발전의 시작이자 뿌리였던 이 시설은 40년간의 운전 기간 동안 국내 에너지 수급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설계 수명이 도래한 뒤 정부는 수명 연장을 하지 않고 2017년 영구 정지를 결정했고,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2024년 해체 계획서를 최종 승인하면서 공식적인 해체 수순에 들어가게 됐다.
국내 최초 원전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고리 1호기 해체는 대한민국이 본격적인 ‘원전 해체 기술’ 자립국가로 나아가는 시금석이 된다. 해체 작업은 단순히 건물을 허무는 수준이 아니라, 고방사선 지역에서의 정밀한 설비 해체, 방사성 폐기물의 분류·처리, 오염된 구조물의 안전한 제거 등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030년까지 해체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다단계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번 해체에는 총 1조 원 이상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과정에서 국내 원전 해체 산업의 인프라와 인력이 동시에 육성될 전망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400기 이상의 노후 원전이 해체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고리 1호기 해체 경험은 해체 기술 수출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열 수 있다.
에너지 정책과의 연결점: 탈원전 vs. 원전 확대
고리 1호기의 해체는 탈원전 정책을 상징하는 사례로도 오랫동안 회자되어 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로드맵의 일환으로 수명 연장 없이 폐쇄 결정이 내려졌고, 이는 원자력계와 산업계의 논쟁을 불러왔다. 윤석열 정부는 반대로 ‘원전 생태계 복원’을 외치며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해외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고리 1호기의 해체는 정치적 논란과 별개로, 안전하고 책임 있는 에너지 전환의 실질적인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면서 미래 원전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점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과제
해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지역사회와의 신뢰 형성이다. 부산과 울산 주민들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 해체 공정의 투명성, 환경 영향 등에 대해 지속적인 우려를 표해왔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은 해체 정보 공개, 주민 대상 설명회, 방사선 감시 시스템 강화 등 다각적인 소통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해체 이후 부지 활용 문제도 주요 이슈다. 원전 부지를 산업단지나 해양 플랜트 기지로 전환하려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방사능 잔재 여부에 대한 주민 우려가 여전히 높아, 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준비: 원전 해체 시장의 가능성
전 세계적으로 2050년까지 약 100여 기 이상의 원전이 해체 예정이며, 이에 따라 원전 해체 시장은 2030년까지 연 2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리 1호기의 성공적인 해체는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첫 실증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자체 기술로 해체 로봇, 방사성 폐기물 처리 장비, 원격 작업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원전 해체 전문기업의 육성과 글로벌 프로젝트 수주도 기대된다.
끝이 아닌 시작
고리 1호기의 해체는 단순한 시설의 종료가 아니다. 그것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실천하는 과정이며,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향한 출발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이제 ‘원전 운영국’을 넘어 ‘원전 해체국’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기술력, 안전성, 국민 신뢰라는 세 축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고리 1호기의 해체는 대한민국 에너지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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